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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한겨레신문 2003년 8월14일 일본 어디로 가나

또 하나의 견인차 미일동맹

해외미군 지원 압력에 자위대도 적극 손잡기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피스데포 대표)

지난 7월26일 국회를 통과한 일본의 `이라크부흥지원특별법'(이하 `이라크특조법')은 미·일 안보조약하의 미·일 군사협력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 법률에 따라 일본은 처음으로 전시하(엄밀하게는 분명한 전쟁 종결을 하지 않은 미군점령하)의 외국 영토에 자위대를 파병해 미·일 군사협력을 할 수 있게 됐다.

◇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이 상황은 냉전 후 미국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미·일동맹의 전지구화', 좀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세계전략상의 일본 자위대 해외 활용'이라는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의 `이라크특조법'도, 미국의 강한 압력 아래서 입법화에 박차가 가해졌다. “1991년 걸프전쟁에서 일본은 야구를 관중석에서 구경했을 뿐이다. (이젠) 투수 및 포수로 출장할 필요는 없으나 그라운드에 나와 경기를 해야 할 것이다”(6월11일)라는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발언은 이를 상징한다.

헌법 제9조의 제약과 국민여론의 저항 속에서 자위대를 해외 미군 활동 지원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이뤄져 왔다. 그 과정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노선, 주변사태 노선, 특조법 노선이라는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90년 걸프 위기 때, 자위대 함선 및 수송기 파견을 허용하는 `유엔평화협력법(가칭)'의 제정을 서둘렀으나 국내 여론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폐기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졸속한 시도의 배후에는 미국의 기본전략에서 오는 압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 일본을 키우고 끌어들여라= 90년 4월에 나온 미 국무부 보고서 `아시아 태평양의 전략적 구조'는 대일본 전략으로, 미군 주둔국쪽의 지원 증가와 해상 항로 방위의 강화를 요구하는 한편, “서방 동맹국과 함께 세계 중요지역에서 안정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일본을 가장 긴밀하게 개입시킨다”고 명시했다. 이 전략 아래서 당시 가이후 도시키 내각은 미군에 대한 수송 협력 등을 요구하는 압력을 미국으로부터 반복해서 받았다.

이 법의 제정에 실패한 뒤 일본 정부는 PKO에 한정한 입법에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군사 색이 강한 유엔평화유지군(PKF) 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PKO협력법'(1992년)을 성립시켰다. 그에 따라 자위대의 해외 PKO는 캄보디아, 모잠비크, 자이르로 확대해 갔다. 95년의 미 국방부 보고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전략'(조지프 나이 보고)에서는 이런 예들을 거론하면서 `일본의 새로운 전지구적 역할' 전략에 따른 일본의 공헌을 칭찬하고 있다.

이 상황을 근거로 97년에 체결한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신 가이드라인)에서는, PKO활동 등에 대해 “양국 정부는 필요에 따라 상호 지원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고 규정했다. 2001년 말에는 동결돼 있던 PKF 부분도 해제됐다.

이렇게 유엔 PKO를 중심으로 자위대를 우선 해외로 끌어내고, 미·일 군사 협력을 준비한 방법이 `PKO 노선'이다.

◇ 자위대는 미군 지원부대=97년의 신 가이드라인은 “일본 주변 지역의 사태로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주변 사태에 대한 미·일 군사 협력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PKO에서는 불가능했던, 유엔 결의 없는 미군 직접 지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을 받아 `주변사태법'(1999년)이 제정되고, 동시에 `미·일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이 개정돼 주변사태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이들 입법 조처에 따라 `주변'의 정의를 모호하게 놔둔 상태에서 자위대는 미군에 대한 병사·물자·탄약의 수송, 의료 활동 등의 후방지원, 후방지역의 수색·구조 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예컨대 한반도에서 미군은 스스로 만들어낸 유사 사태에 대해 자위대의 지원 활동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 상황은 지난 6월에 제정된 `무력공격사태법'을 중심으로 하는 유사 3법(전시대비법)으로 한층 더 강화됐다. 이 법률로 `무력공격예측사태'가 상정돼, `주변사태' 개념과 겹쳐지면서 미·일 군사협력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유사와 관련시키는 방법으로 자위대의 해외 미군 지원 활동을 확대하는 노선이 `주변사태 노선'이다.

◇ 평화헌법도 고쳐라=그러나 PKO 노선, 주변사태 노선만으로는 자위대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지탱할 수 없다. 이에 따른 초조함도 가세해 상황의 근본적인 변경이 필요하다는 미국 내의 인식이 표출된 것이 2000년 10월에 나온 미 국방대학 국가전략연구소(INSS) 보고서 `미국과 일본-성숙한 파트너십으로'(이른바 아미티지 리포트)다. 이것은 미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민주·공화 양당에 영향력을 지닌 일본 전문가가 연명으로 작성한 초당파 대일 전략 문서다. 보고서는 미·일 동맹 관계의 목표와 관련해 단적으로 “미국·영국 관계가 모범”이라고 쓰고 있다. 이라크 침공 때의 미·영의 일체감을 상기해 보자. 그리고 일본에 대해 `유사 입법의 제정' `PKF 동결의 해제'를 요구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의 금지는 동맹국으로서의 협력을 제약하고 있다”며 평화헌법의 정부 해석 변경까지 제안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지금 `일본의 집단적 자위의 금지'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특조법 노선'이라고 부르는 움직임이다.

9·11 동시 테러사건에 대한 여론을 이용해 자위함의 미군 지원 연료 공급 작전을 인도양·아라비아해에서 전개하도록 한 `테러조처법'(2001년 10월), 그리고 이번의 `이라크 특조법'으로 이어진 움직임이다. 목적을 한정하고 기간도 한정(실제는 별도 입법으로 연장 가능)하고 있으나, 세계의 어느 장소든 가리지 않고 국제 여론과 일본의 여론을 지켜보면서 자위대의 미군 지원·해외 활동을 일상화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특조법이 아니라 일반법으로 이를 할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군은 첨단 정보기술(IT)을 구사한 대담한 미래형 군대로 변모하고 있다. 동맹군은 할 수 없이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다. 미사일방어(엠디)는 그 전형이다. 미군 지원의 형태로 축적된 자위대의 해외 전개 능력은 당연히 자위대 자신의 힘으로도 축적된다. 이런 동향을 생각할 때 동북아시아의 시민사회는 국경을 넘어 비군사적·협조적인 안전보장을 위해 손잡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1937년생/ 비영리활동법인 피스데포(평화자료협동조합) 대표, 태평양군비철폐운동(PCDS) 국제 코디네이터, 비군축의원 네트워크 동아시아 코디네이터, 〈핵무기·핵실험 모니터〉 책임 편집자/ 저서:〈재일미군〉 〈정보공개법으로 본 오키나와의 미군〉 〈미사일방위〉 등.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3/08/p0070000002003081321001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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